전시명
- THE WASTE LAND & A Universal Truth series
- 전시기간 : 2013.10.22 - 2013.11.02
- 전시장소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2관 2실 (홍문관2층)
- 참여작가 : 곽철원, 한성수
THE WASTE LAND _ 곽철원 박사학위청구전
곽철원의 작품엔 아주 익숙하지만 반면 참으로 낯선 풍경들이 등장한다. 아스라하게 펼쳐진 사막의 풍경은 그 막막한 의미가 심미적인 색채와 구도와 매치되어 보는 이를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분명히 어디선가 느꼈던 느낌들이 전해져오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거대하고 암울하지만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이중적인 풍경은 사막을 장식하는 아이비 잎사귀의 그림자로 정점을 찍는다. 서늘한 바람처럼 자리한 아이비의 잎사귀는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아우르며 그 중립적인 선에 서 있는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동양화의 여백처럼 사유를 이끌어낸다.
칼 구스타프 융의 사상에서 핵심을 이루는 자기(Self)와 자아(Ego)의 개념과 집단무의식 이론은 작가가 오랜 동안 탐구해온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와 꿈속에 갇혀져 있는 인간 정신의 원천은 무엇이며 참된 ‘나’는 무엇인지, 페르소나에 갇혀져 있는 ‘그림자’를 돌아보고자 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담담하다. 관조적이고 삼자적인 시선이지만 궁극의 인간적인 고뇌의 면모가 이중적으로 중첩된다. 마치 작가의 소재가 그러하듯이.
활자를 배치하거나 19세기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실험적인 연속 사진을 차용함으로써 익숙하고 편안한, 한편으로는 장식성이 다분한 장면을 연출한다. 낡고 바랜 이미지에서 감상자는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낸다. 활자나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사진 이미지는 당시에는 혁신적이고 과감했던 소재다. 곽철원의 작품세계는 이를 오늘날 되살려내고 심미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고 승화된 이미지로 자리하게 된다. 19세기 작가의 과학과 미술을 넘나드는 실험정신은 곽철원의 작품세계에서 외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눈의 가시적 한계에 대한 오류를 수정한 미술사적으로 획기적이었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곽철원의 작품은 눈이 보이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이로움의 세계를 궁극적으로 펼쳐보이고자 한다.
A Universal Truth series _ 한성수 박사학위청구전
이미지를 표현하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공간과 시간의 거리두기를 분해하고 있다. 그것은 담기(recording)를 통해 거꾸로 다가가 지금과 함께 시간을 병치하고 연기(延期)하기도 하며 흔적의 자취를 담아 기호공간에 담겨진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나아가 미디어의 작용은 1970년대 이후 인공위성(satellite)을 중심 매개체로 하여 실시간으로 관찰자의 역할을 이뤄 나가는 획득된 시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지도가 공간의 극복이며 시간의 잣대였다면 인공위성으로부터 제공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공간과 시간의 계면을 동시에 편재하며 지속적인 이미지의 전위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연결된 인공위성의 정보는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획득하는 동시에 저장된다. 그로 인해 현재의 다양한 사건이 생성되고 세계 간의 존재로서 리좀(rhyzome)의 편재에 융합되게 된다. 이렇게 융합된 이미지는 각 이미지가 가진 경계적 영역, 그 상징성, 내재적 가치들을 무너뜨리거나 의미의 닫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기초월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융합된 구조는 삶의 장(場)과 그 모습이 몽타주(montage)와 같이 재편성 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데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기호가 그 자체로서 존재 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무수한 텍스트들 간의 관계를 소비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언술에서 이 시대의 기호(이미지)를 예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미디어 이론가 랄프 슈넬(Ralf Schnell) 또한 상호텍스트성을 기조로 몽타주는 이미지를 융합하는 동시에 그 관계들은 대단히 상이한 특성과 기능이 될 수도 있고, 구조 또는 내용을 재 생성시킬 수도 있으며,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모습은 세계의 옵저버로 변모되고,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이미지 안에 나타난 공간의 초월적 존재가 된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존재는 세계 속의 관계나 과정을 통해 의미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미지-내-세계’속에는 이미지를 가장하여 관계를 통해 얻으려는 욕망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서로 연결시키고, 대상들을 통합시키며, 빛과 색채의 가치를 유희하는 동시에 갈등과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지몽타주는 구조의 내적 정합성이 분열되면서 자생적이며 지속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의미증폭기 또는 의미파생기’로서 바라 볼 수 있다. 의미증폭기로서 몽타주는 낯선 가능성의 다 초점 사유행위이며 다시쓰기로부터 시작되는 연속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지는 디지털 세계의 접속을 통한 무한한 표류로서 나타나고 있는데 재구조로서 관계하는 몽타주에 대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해체적 분절과 파편화로서 연결 지어 코드화된 탈 직선화와 차연(différance)의 개념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무한한 연기, 그에 결합된 융합적 속성을 차연으로서 바라보고 있다. 원전이 표류하는 이미지는 지표화된 텍스트의 구조 속에 녹아들며 이미지의 영역과 알레고리가 제시하는 벗어난 아우라를 재인식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기억되고 저장된 장소-New York을 중심으로-의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이미지와 함께 몽타주로서 결합되고 나열되며 명료하게 규정 짖기 어려운 기호화된 회화적 요소로서 상호관계를 주고 있다. 다시 나뉘어 지고 파편화된 이미지들과 중첩이라는 재조합의 과정 속에 함몰되어 서로에게 희생하며 기의를 나누어 주고 있다. 또한 기억의 공간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인공위성위에 편입되어 끼어든 듯 얹혀 있다. 그리고 공간은 비가시적인 공간을 동경하면서 가시적으로 느끼게 된다. 과거 기억의 풍경이나 도심의 모습은 지금 서 있는 공간속에 삼투되어 잠겨 있다. 이 기억의 공간은 현재하는 공간이 아닌 가시적인 이 공간과의 마주하는 통섭적 존재인 것이다.
기억의 공간은 인공위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우하고 있는데. 그 인공위성은 모든 세계를 전 방위적으로 연결하는 GPS라는 옵져베이션을 통해 현실 공간 안에 증강 현실을 데려다 놓았으며 그로 인해 확장현실을 낳고 있다. 바로 로고스 중심적 위치에서 벗어나 탈 중심적 리좀의 아이콘을 의미하는 것이다. 같은 공간의 이미지들은 인공위성의 이미지와 퓨징(fusing) 되거나 기생되어 그 위계를 다의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믿고 있는 공간이미지에 대한 ‘보편적 진리(A universal truth)’의 임계점이 욕망 에네르기를 연료로 하여 천천히 뒤틀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기간 : 2013.10.22 - 2013.11.02
전시장소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2관 2실 (홍문관2층)
참여작가 : 곽철원, 한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