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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방법과 정신  Les Medias, la Mode, la Morale』 포스터입니다.

전시명

『미디어아트, 방법과 정신 Les Medias, la Mode, la Morale』
전시기간 : 2011년 8월 1일 (월) ~7일 (일)
전시장소 : 현대미술관 1관
참여작가 : 윤지현, 강정혁, 박병래, 이재민, 서동수, 이이남, 김창겸, 김채형, 찰리한, 하석준, 최지범, 김태진, 장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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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내용

 

미디어아트, 방법과 정신

Les Medias, la Mode, la Morale

 

 

 

+ 미술의 최전선 미디어아트

만일 디지털시대의 우리가 새로운 가치로서의 미술생산을 도모하거나 기존의 미술 패러다임을 재조정할 기회를 찾는다면, 그것을 시험하고 검증할 적합한 시험관은 미디어아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미디어아트는 미술 영역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경험과 지식들을 교차시키면서, 21세기 사이버문화에 부합하는 혁신적 미술의 면모를 입증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시각예술이 실재를 모방한 환영을 운용했다면, 미디어아트는 실재와 가상이란 두 개의 현실을 이용하고 있다. 비디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 같은 일상화된 디지털 장비와 IT 활용에 의한 미디어아트는 두 현실 간의 상호 침투 혹은 호환되는 현상을 연출해낸다. 그런데 물리적 현실과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VR)의 상호 중첩이란 기술문제 자체는 멀티미디어가 보편화된 지금 더 이상 경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두 현실의 공간 위상을 합치시킨 복합현실(Mixed Reality, MR)이 실제로 게임과 안내시스템 및 임상의학에서 실현되었고, 두 공간의 융합으로 현실 효과를 증가시킨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도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 적합한 디스플레이로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눈부신 진보처럼 미디어아트 역시 새롭고 다양한 기술로 매개된 작품들로 우리 눈길을 사로잡으리라는 것이 확실한 가운데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흔히 기술적 표현의 신기함과 가상세계의 현란함에 금방 매혹되곤 한다. 하지만 그 찰나적 호기심을 작품의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깊이 있는 의식으로 이끌어나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감상자의 의식은 미디어의 명멸하는 기계적 환경 속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폴 뷔릴리오가 현대 과학기술문명을 성찰한 소멸의 미학에서 지적하듯이, 빠르게 출현, 몰입, 소멸을 반복하는 테크놀로지 이미지에 의해 우리의 의식은 피동적이 되고 실제 예리해야 할 지각이나 사유는 무뎌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이버시대에 과학기술 혁명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정작 우리의 의식이다. 인간의 의식은 단선적 진보를 거듭하는 기계와 달리 자연의 생명원리에 기반을 둔 주체적 정신활동의 소산이다. 물론 이 정신은 절대적 규범과 이성의 범주로 해석되기보다 윤리적 판단과 세계관이 담긴 자기존재의 이해와 결단의 근거로 보아야 한다. 이 같은 정신의 실천적 지향으로서 나타난 문화활동이 예술이고 현행의 미디어아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디어아트에서 기술의 매체인 미디어를 문화의 매체인 아트로 전환시키는 판단적 능력인 정신 즉 우리의 의식에 보다 더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테크놀로지와 의식을 결합한 테크노에틱스 technoetics’란 로이 에스콧의 미디어아트 개념도 의미심장하게 돌출될 수 있다.

 

+ 테크놀로지 vs 에콜로지

<미디어아트, 방법과 정신> 전시회는 미디어아트의 방법적 토대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주목 이상으로 그것을 예술로 연동시키는 정신(morale)에 주목하고자 한다. 예술은 문화이고 인간 정신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 정신의 몫을 테크놀로지와 대응하는 자연생태학인 에콜로지의 개념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연에 속해 있으며, 이미 수 만년 이상을 자연 속에서 살아왔다. 아무리 가상현실 속에 있어도, 자연의 유기적 생명체로서 인간의 근본 속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없앤다면,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 로봇 같은 기계인간 혹은 매트릭스에 사는 가공 인간 내지는 아바타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과학기술의 진보는 우리를 장차 그러한 세계로 이르게 할지 모르지만, 그런 비관적 예측은 마치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레이션의 세계에 가상만이 존재하리라고 예상했던 것과도 같을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전제하지 못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간의 유기적 상상력, 상호작용성, 소통과 네트워크 같은 관계의 요소를 다시금 되새긴다면, 미래 세계는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합성어에 다름 아닌 미디어아트에서도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뢰가 넘쳐난다. 이 과잉을 인간의 자연 기원-인간을 뜻하는 라틴어 Homo는 그 어원이 흙을 뜻하는 Humus에 있다-에 대한 환기와 상상으로 상쇄시키면, 과학기술과 예술정신의 균형 있는 전개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과학과 예술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인간 의식의 재구성이라면, 양자는 인간 의식의 환경인 자연과 그로부터 발기된 정신을 배제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어서, 우리는 테크놀로지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환경오염, 군사무기 개발과 대량 인명살상, 원자력발전소의 증가, 유전자조작과 신종 박테리아의 출현, 자원고갈과 자연재해, 이상기후 등 지구촌을 위협하는 원인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생태계의 평형이 무너져 인간은 결국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신과 모든 생명체의 절멸을 가져오는 디스토피아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파국을 피하려면 필연적으로 과학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과학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디어아트는 다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 더 돋보인다. 왜냐하면 미디어아트는 과학과 예술의 매개항을 비판의 기제로 사용함으로서 맹목적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조화의 공식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미술형태이기 때문이다.

호모 테크니쿠스 Homo technicus는 호모 에콜로지쿠스 Homo ecologicus와 상반된 인간유형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상매체와 컴퓨터에 익숙한 현대 테크니쿠스 인간은 자연친화형인 에콜로지쿠스 인간과 비교해서 지식과 정보로 충만해 있지만,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찰나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정서적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고 간주된다. 여기서 미디어아트는 과학문명이 낳은 기계론적 인간관의 딜레마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작가들이라면 디지털 장비와 IT 기반의 이미지 상상력으로 테크놀로지&10967에콜로지(기호&10967는 포함을 의미하는 기호가 쌍방향으로 작용함을 상징)의 상황을 얼마든지 연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랙탈기하학을 기원으로 한 컴퓨터 프로그래밍기법으로, 미디어아트는 자연의 유기적이고 불규칙한 형상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자연계의 형상인 자기상사성의 형태를 재생산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로서 자연의 유기적 관계성을 테크니쿠스형 인간 의식에 부각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객관적 광학의 이미지를 떠나 시각의 잠재적 이미지 즉 내면의 잠재 자아를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시도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디어아트는 정신 morale과 자연을 배제한 과학만능주의의 비틀림에 쇄기를 박고 과학이 자연으로 중심이동을 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 기계론 미학에서 유기체 미학으로

한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미디어아트가 기존의 어떤 형식의 미술보다 유동적이며, 생명체와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감상자와 외부 자극에 대해 움직이고 반응하면서 보다 더 직접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작용을 한다. 또한 정보예술로서, 프로그래밍에 의해 작품의 형상이 생성, 생장, 증식될 수 있고, 감상자와의 상호작용 interaction으로 신호를 주거나 받거나 할 수도 있다. 미디어아트의 이 같은 생명체적 현상은 결국 테크놀로지와 자연이 하나의 공통분모 즉 유기적 관계를 토대로 성립된 점을 시사한다. 자연의 생물군이 일정한 생활권 oikos(에콜로지의 어원) 안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공생하듯이, IT 정보시스템 역시 정보의 생산과 교류를 통해 유기적 관계의 커뮤니케이션 사회를 형성한다. 정보의 네트웍도 마찬가지로 마치 팽창했다 시드는 구름 nuage처럼 비고정적으로 흐르며 송수신자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시스템과 네트웍을 기둥으로 삼은 미디어아트는 따라서 과거의 키네틱아트와 상당히 다르다. 키네틱아트가 모터와 같은 단순한 기계기술을 배경으로 한 스펙터클이라면, 그로부터 진화된 미디어아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영역 안에서 생명체의 성장모델 알고리즘에 의해 자연 이미지들을 만들 수 있는 유기적 형태형성 morphogenesis 차원의 스펙터클로 나아간다. 비록 이렇게 사이버공간에서 CR로 영상을 생산해내지 않더라도 미디어아트는 실재이든 가상에서든 자연계의 복잡하고 불규칙적이며 유기적인 형태와 동작을 만들어낼 수 테크놀로지 미술이다. 따라서 미디어 작품들은 대체로 작동시스템과 인지방법에 있어 연결에서 표현발생에 이르기까지 상호 소통과 통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거의 유기체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자연의 생물이 세포구조에서부터 행동발생에 이르기까지 신경조직의 관계를 통해 소통과 통합의 유기적 작동을 하는 현상과 유사하며, 그렇기에 자연의 생명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기체적 미학을 달성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디어아트의 모든 상호작용 interactivity은 소통의 형식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유기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의미전달의 네트워크가 있고, 송신과 수신의 인터랙션의 과정이 있으며, 적극적 소통의 방식으로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의 정보 시뮬레이션에서는 전통적 방식의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무효화될 수밖에 없으며,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없앤 쌍방향식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수립된다.

그렇기에 오늘날 미디어아트의 철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가치관이 아닌 상대적 가치관이 될 것이며, 배타적 대립의 이원주의(변증법)가 아닌 다원주의 그리고 로고스중심의 동일자가 아닌 주체와 타자의 통합을 위한 사유들이 될 것이다. 미디어아트가 멀티미디어의 네트워크와 설치를 통해 다양한 인터페이스 작업들을 만들거나 국경과 인종 그리고 전문분야의 경계를 넘어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상호 소통의 교류 속에 작품을 제작해내는 일이 그러한 사유를 반증한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통합은 우리의 미적 경험과 인식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시공간에 대한 심리적 변화, 사회적 태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라기보다 새로운 차원의 심리적 테크놀로지의 예술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공간의 감각을 창출하고 이미지의 상호작용과 반응, 생성과 소멸을 일으키는 미디어아트는 우리로 하여금 상보관계 속에서 과학과 자연을 조화롭게 상호 접속하도록 하는 동기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고 통합한 유기적 커뮤니케이션 미학의 단초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MEDIA ART

미디어 아트

TECHNOLOGYECOLOGY

과학기술 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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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ODE LA MORALE

 

 

 

서영희 (홍익대교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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